월악산 국립공원
월악산국립공원은 1984년 12월 31일에 우리나라 20개 국립공원 중 17번째 국립공원으로지정되었다.
행정구역상으로 제천시, 충주시, 단양군, 문경시 4개 시·군에 걸쳐 있으며 북으로 충주호반이월악산을 휘감고, 동으로 단양8경과 소백산국립공원, 남으로 문경새재와 속리산국립공원과 같은 아름다운자연경관으로 둘러싸여져 있다. 월악산 영봉은 국사봉이라고도 불리며 예로부터 신령스런 산으로여겨져 "영봉"이라고 불리어지고 있다. 해발 1,097m로 험준하며 가파르기로이름나 있고 암벽높이가 150m높이에 둘레가 4km나 되는 거대한 암반으로 형성되어 있다. 공원 내에는 1,161m의 문수봉을 비롯하여 여름에도 눈이 녹지 않는다는 하설산, 매두막, 대미산, 황정산 등의 1,000고지가 넘는 높은 산들이 산악군을 형성하며 벌재에서 마패봉에이르는 백두대간이 뻗어있고 고봉준령들 사이로 많은 경관명소들을 지닌 송계계곡, 용하계곡, 선암계곡이 굽이쳐 흐르며 산악공원의 장관을 보여주고 있다.
주변에 충주호반을 비롯하여 문경새재도립 공원과 제천의 의림지, 단양 적성의 선사유적지와 석회암지대에 형성된 많은 동굴들, 청풍의 문화재단지 등 문화·경관자원이 산재해 있고 수안보·문경·문강·단양유황온천이 30~4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공원내에 미륵사지를 비롯하여 덕주사, 신륵사등의 전통사찰과 마애불 미륵사지, 빈신사지사자석탑, 덕주산성, 신륵사 3층석탑 등 많은 문화자원을보유하고 있는 자연과 문화자원이 어우러진 빼어난 국립공원이다.
교통안내
- 충주IC->36번국도(충주방면) > 충주대학교 > 달천사거리(수안보방면) > 건국대 > 충렬사 > 단월 > 유즈막삼거리(우:수안보) > 3/19/36번국도 > 살미
> 용천삼거리(직진) > 수안보 > 월악산교차로(좌:월악산/단양/제천) > 597지방도 > 월악산매표소 > 송계계곡 > 월악산
- 남제천IC > 82지방도(금성방면) > 금성 > 청풍문화재단지 > 수산삼거리(충주방면) > 덕산 > 송계리
- 단양IC > 5번국도(단양방면 > 36번국도(충주방면) > 장회 > 수산 > 덕산 > 송계리
충주호
충주호는 충주시 종민동과 동량면 사이의 계곡을 막아 만든 다목적 호수로 우리나라 호수 가운데가장 크고 깨끗한 호수이다. 월악산국립공원, 송계계곡, 청풍 문화재단지, 단양 8경, 고수동굴, 구인사, 수안보온천, 노동동굴 등 수많은 관광자원들이 주변에 펼쳐져 있으며, 국제적인 관광지로외국인을 포함,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충주나루터에서 쾌속선과 대형유람선이 충주호뱃길 130리를 옥순봉, 구담봉, 만학천봉, 초가바위, 고래바위, 현학봉, 오노동, 신선봉, 강선대, 버들봉, 오성암, 설마봉, 제비봉, 두무산 등을 구비돌아 신단양나루, 장회나루까지운항되고 있다.
충주호 장회나루 또한 청풍나루 근처에 오면 동양에서 두 번째로 높은 수경분수를 배를 타고감상하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 동량면 하천리에 위치한 충주호리조트는 옛전설이 서린 780m의옥녀봉을 등에 지고 광활한 충주호반에 건설된 국내 제일의 호반관광지로 양궁장, 테니스장, 축구장, 퍼터골프장, 실내탁구장, 수영장 등의 운동시설 및 오락시설이 고루 갖추어져 있을뿐만 아니라, 충주호와 연계된 수상스포츠 시설이 겸비되어 있어 전천후 관광명소로 각광을 받고있다.
교통안내
- 충주IC > 36번국도(충주방면) > 충주대학교 > 달천사거리(제천방면) > 19번국도 > 충주역 > 칠금사거리(제천방면) > 목행삼거리(댐방면) > 충북선 철로 > 충원교(건너) > 충주댐 > 충주호
중앙탑
현재 남아있는 신라석탑으로는 가장 높은 석탑이다. 2층기단 위에 세워진 일반형석탑이지만 탑신에비해 기단부의 너비가 넓어졌다. 기단은 각부를 몇 장의 돌로 조립하였는데 아래위층 기단이모두 면석에 탱주 네개씩을 세워 놓았다. 탑신부 역시 각부를 몇장의 돌로 구성 하였는데 위층으로올라록 좁아들면서 중적되었고 옥개석 받침은 각층이 모두 5단으로 되었으며, 옥개석 각측마다낙수홈이 파여져있다. 상륜부는 노반을 이중으로 포개어 쌓았고 그 위에 복발 앙화만이 남아있다.
세부수법에 있어서 약식과 섬약으로 흐르는 경향을 보이며 전체의 형태도 높이에 비하여 너비의비례가 적어서 지나치게 높은 느낌을 준다. 1917년의 보수때에 제6층 옥신과 기단 밑에서 사리장치가발견 되었는데 제6층 옥신 에서는 경감 2매, 칠합 1개, 은제사리병과 그안에 들어있던 유리제사리병하나씩이 발견되었다. 기단에서는 청동제 유개합 하나가 발견되었다. 그 중 경감은 고려경으로창건이후 2차적인 사리납치가 있었던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은 지리적으로 한국 중앙부에 위치한다고하여 중앙탑이라는 속칭으로 불리어 지는데 신라 원성왕대(785 ~ 798)에 세워졌다는 전설이있으며 그 양식으로 보아 그 시기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교통안내
- 북충주IC > 82지방도(충주방면) > 중원고구려비(입석삼거리 옆에위치)
수안보
우리나라 최초의 자연적으로 용출한 온천으로써 약 3만년 전부터 솟아오른 천연온천수이며, 유온천이라는명칭은 현종9년(AD.1018)에 기록으로 남겨져 있으며 이밖에 이조실록, 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청구도, 대동여지도 등 30여종의 역사책에 기록을 남긴 유서 깊은 온천이다.
조선시대에는 세종대왕의 부마였던 연창위 안맹담과 세조 때 우의정 권남 그리고 숙종 때의 명유권상하등 여러 선비와 전국에서 운집한 욕객들로 사철 붐비었다는 사실을 "온정동 동규절목"에서잘 표현하고 있으며 특히 병원이 없었던 당시 각종 환자들이 전국에서 몰려 들었다고 한다. 근대 온천으로 발전한 것은 1885년 노천식 욕조를 설치하고 1929년 현대식 장비를 사용한온천 공 굴착으로 인하여 온천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용이 따뜻한 곳을 찾아 이곳에서 겨울을 나던 중 병을 고치고 힘이 세어져 하늘로승천하려다 못내 이루지 못하였다고 하는 슬픈 전설이 있으며, 한 겨울 수안보 그릉메기 고개를지나던 문둥병 거지가 김이 무럭무럭 나는 곳에서 겨울을 나던 중 그곳 논 한가운데서 따뜻한물이 솟아 그 물로 아픈 곳을 씻었더니 병이 깨끗이 나았다는 전설이 구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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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주IC > 6번국도(충주방면 > 충주대학교 > 달천사거리(수안보방면) > 건국대 > 충렬사 > 단월 > 유즈막삼거리(우:수안보) > 3/19/36번국도 > 살미 > 용천삼거리(직진 > 수안보
충렬사
충렬사는 인조 때 임경업장군(1594~1646)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숙종 23년(1697)에건립하고 영조3년 (1727)에 사액되어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장군의 충열비와 부인 완산 이씨의 정열비가 있는데 충열비는 정조 15년 왕이 친히 글을 지어 비석에새겨 전하게 하였으니 어제달천충열사비이다. 또한 비문은 조선금석총람에 실려 있다. 임경업장군은 선조 27년(1594)에 판서 임정의 후손인 임황의 아들로 충주 풍동에서 태어났다. 자는 영백이며 호는고송이라 했으며 본관은 평택이다.
교통안내
- 충주IC > 36번국도(충주방면) > 충주대학교 > 달천사거리(수안보방면) > 건국대 > 충렬사
충주댐
국내 최대의 콘크리트 다목적댐인 충주댐은 충주시 종민동과 동량면 조동리를 잇는 댐으로 남한강을 막아수자원 확보 및 홍수피해방지, 전력생산을 목적으로 한다.
높이 97.5m, 길이 447m, 저수용량 27억5천만 평방미터의 댐으로써 본댐 하류에는 높이 21m, 길이 480.7m의 조정지댐이 있다.
충주댐 좌안정상에는 물전시관, 기념탑, 휴식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우안정상에는 물레방아 휴식공간, 헬기장, 그리고, 충주호유람선을 탈 수 있는 충주나루가 위치해 있다.
충주댐으로 생긴 충주호는 유람선이 운행되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교통안내
- 충주IC > 36번국도(충주방면) > 충주대학교 > 달천사거리(제천방면) > 충주역 > 칠금사거리(제천방면)
> 목행삼거리(댐방면) > 충북선철로 > 충주댐
탄금대
1976년 12월 21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4호로 지정되었다.
신라 진흥왕 때 악성(樂聖) 우륵(于勒)이 가야금을 탄주하던 곳이라 전한다. 본래 대문산이라부르던 작은 산으로 밑으로 남한강과 접하면서도 기암절벽에 송림이 우거져서 경치가 좋은 곳이다.《삼국사기(三國史記)》에보면, 우륵은 가실왕(嘉悉王) 당시의 가야 사람으로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가야금을 가지고 신라에귀화하였다. 진흥왕이 기뻐하여 우륵을 충주에 거주케 하고는 신라 청년 중에서 법지(法知)·계고 (階古)·만덕(萬德)을 뽑아보내 악(樂)을 배우게 하였다. 우륵은 이들의 능력을 헤아려 각기춤과 노래와 가야금을 가르쳤다 한다.
그는 이곳을 우거지(寓居地)로 삼고 풍치를 상미하며 산상대석(山上臺石)에 앉아 가야금을 타니, 그 미묘한 소리에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로 연유하여 이곳을 탄금대라 불렀다. 또한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도순변사(都巡邊使) 신립(申砬)이 8,000여명의 군졸을 거느리고와 배수진을 치고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군대를 맞아격전을 한 전적지이기도 하다. 신립은 전세가 불리하여 패하게 되자 천추의 한을 품고 강에투신 자살하였다. 탄금대 북쪽 남한강 언덕에 열두대라고 하는 100척이나 되는 절벽이 있는데신립이 전시에 12번이나 오르내리며 활줄을 물에 적시어 쏘면서 병사들을 독려하였다고 하는곳이다. 이곳에는 신립의 충의심을 기리기 위해 군수 김용은(金容殷)이 건립하고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이 찬한 탄금대비가 있다.
또 충주문화원, 야외음악당, 충혼탑, 감자꽃노래비, 탄금정, 악성우륵선생추모비, 신립장군순절비, 조웅장군기적비, 궁도장, 대흥사 등과 조각공원및 체육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교통안내
- 충주IC > 36번국도(충주방면) > 충주대학교 > 달천사거리(제천방면) > 충주역 > 칠금사거리(장호원방면) > 탄금대
- 북충주IC > 82번지방도(충주방면) > 입석삼거리(우) > 신촌삼거리(직진) > 창동 > 탄금대교 > 탄금대
미륵사지
옛 기록에 전하는 계림령과 충북과 경북을 연결하고 있는 하늘재 사이의 분지에 남죽향으로 펼쳐진사지이다.
여기에 일찍이 석굴사원이 경영되었으나 오래 전에 소실되어 현재는 석조물만 남아 있다.
이 미륵리 사지 내에는 보물 95호인 5층 석탑과 96호인 석불입상이 있고 지방 유형문화재 19호인 석등과 33호인 3층석탑이 있다. 이곳의 석불은 국내 유일의 북향 불상이며 석불이있는 석굴의 방형의 주실은 가로 9.8m, 세로 10.75m의 넓이이며 높이 6m의 석축을큰 무사석으로 쌓아 올렸고 그 가운데 불상을 봉안하였다. 석축 위에는 지금은 없어진 목조건물이 있었으며 전당은 목조로 된 반축조석굴이다.
모든 조영계획은 석굴암을 모방하였고 규모가 웅장한 반면에 퇴화과정이 역력한 석굴이라 하겠다. 본 사지는 1977년과 79년 두차례에 걸쳐 청주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이 이루어져 그윤곽이 다소 드러나게 되었고 1982년에 이화여자대학교에서도 발굴한 바 있으나 확실한 연대는알 수 없고 발굴 당시 미륵대원이라고 쓰인 기와가 발견되어 삼국유사에 미륵대원 등이 기록된것으로 보아 일연 스님이 살았던 그 이전에 지어진 사찰이라는 것이 확실히 고증되므로 고려초의 것으로 추정된다.
즉, 관련 유물과 기록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이 사찰은 고려 초기인 11세기 경에 창건되었다가고려후기인 고종 때 몽고병의 침입으로 소실된 듯 하며 사찰 이름은 미륵대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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